
토션빔은 싸구려, 멀티링크는 고급? 서스펜션 계급론의 진실과 내 차의 승차감이 결정되는 원리
자동차 카탈로그나 시승기 영상을 보다 보면 "이 차는 뒷바퀴 서스펜션이 토션빔이라 승차감이 별로네요" 혹은 "역시 멀티링크를 넣어줘서 하체가 탄탄합니다"라는 평가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됩니다.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는 토션빔이 들어간 신차가 출시되면 "원가 절감의 끝판왕", "2열 승객 허리 나가는 차"라며 맹비난을 퍼붓기도 합니다.
도대체 서스펜션이 뭐길래, 그리고 '토션빔'과 '멀티링크'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걸까요?
서스펜션(현가장치)은 노면의 충격을 흡수하여 승차감을 결정하고, 타이어를 노면에 밀착시켜 주행 안정성을 확보하는 자동차의 허리이자 무릎 같은 존재입니다.
구조에 따라 크게 좌우 바퀴가 연결된 '일체차축식(토션빔 등)'과 따로 노는 '독립현가식(멀티링크 등)'으로 나뉘는데, 각각의 방식은 단순히 가격 차이를 넘어 물리적인 장단점이 명확합니다.
하지만 "토션빔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세팅 기술에 따라 토션빔이 멀티링크 뺨치는 승차감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두 서스펜션의 구조적 차이와 승차감의 특성, 그리고 제조사들이 왜 이 방식을 선택하는지 그 이면의 진실을 파헤쳐 드립니다. 스펙표만 보고 차를 거르기 전에, 진짜 나에게 맞는 승차감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드리겠습니다.
🚙 바퀴를 지탱하는 뼈대, 단순한 스프링 그 이상의 과학
우리는 흔히 서스펜션이라고 하면 충격을 흡수하는 스프링이나 쇼크업소버(댐퍼)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바퀴가 차체에 어떻게 매달려 있느냐 하는 **'구조(Geometry)'**입니다.
이 구조가 바퀴의 움직임을 결정하고, 그 움직임이 곧 우리가 엉덩이로 느끼는 승차감과 핸들을 돌릴 때 느끼는 코너링 성능이 됩니다.
특히 논란의 중심이 되는 것은 **'후륜(뒷바퀴) 서스펜션'**입니다. 앞바퀴는 조향을 해야 하므로 대부분의 승용차가 '맥퍼슨 스트럿'이라는 독립 현가 방식을 사용해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뒷바퀴는 조향의 의무가 없기 때문에 제조사의 철학, 차량의 등급, 그리고 원가에 따라 '토션빔'과 '멀티링크'라는 두 가지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과거 중형차 이상급에는 멀티링크, 준중형 이하 소형차에는 토션빔이 국룰(국민 룰)처럼 적용되었지만,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과 공간 확보 이슈로 인해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차는 중형차인데도 토션빔을 써서 욕을 먹고, 어떤 차는 소형차인데도 멀티링크를 넣어 찬사를 받습니다. 과연 구조의 차이가 실제 주행에서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낼까요?
두 방식의 메커니즘을 뜯어보며 그 차이를 낱낱이 분석해 보겠습니다.
🔗 가성비와 공간의 제왕 '토션빔(CTBA)', 왜 욕을 먹나?
**구조와 특징:**
토션빔(Coupled Torsion Beam Axle)은 이름 그대로 양쪽 뒷바퀴가 하나의 굵은 쇠파이프(빔)로 연결된 구조입니다.
구조가 매우 단순하고 부품 수가 적어 가볍고 튼튼합니다.
무엇보다 서스펜션이 차지하는 부피가 작아, 트렁크 공간과 뒷좌석 공간을 넓게 뽑아내는 데 유리합니다.
아반떼나 쏘울 같은 준중형/소형차들이 넓은 실내를 자랑하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작 단가가 저렴해 차량 가격을 낮추는 데도 일조합니다.
**치명적인 단점:**
문제는 **'좌우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왼쪽 바퀴가 과속방지턱을 밟아 튀어 오르면, 빔을 통해 연결된 오른쪽 바퀴도 덩달아 영향을 받아 비틀립니다.
이 때문에 노면이 불규칙한 곳을 지날 때 차체 뒤쪽이 좌우로 흔들리거나, 뒷좌석 승객에게 "통통" 튀는 불쾌한 잔진동이 전달됩니다.
특히 한쪽 바퀴만 요철을 밟았을 때 차가 휘청거리는 느낌(피시테일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함)은 토션빔의 태생적 한계입니다.
그래서 "뒷자리 승차감이 저렴하다"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 승차감과 성능의 마에스트로 '멀티링크', 완벽한가?
**구조와 특징:**
멀티링크(Multi-link)는 양쪽 바퀴가 서로 연결되지 않고, 여러 개의 링크(팔)와 암(Arm)으로 독립적으로 차체에 연결된 방식입니다. 한쪽 바퀴가 충격을 받아도 반대쪽 바퀴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지면에 딱 붙어 있습니다.
링크들이 바퀴의 각도를 정교하게 제어하여 코너를 돌 때 타이어 접지력을 최대로 유지해 줍니다. 덕분에 노면 충격을 부드럽게 걸러내는 고급스러운 승차감과, 고속 주행 시 바닥에 깔리는 듯한 안정감을 동시에 제공합니다.
그랜저, 제네시스, 쏘나타(상위 트림) 등 승차감을 중요시하는 차들이 주로 채택합니다.
**단점도 있다:**
구조가 복잡한 만큼 부품이 많고 무거우며 비쌉니다. 이는 차량 가격 상승과 연비 저하로 이어집니다.
또한, 복잡한 링크들이 들어갈 공간이 필요해서 트렁크나 실내 공간이 토션빔 차량보다 좁아질 수 있습니다.
유지 보수 측면에서도 부싱(고무 부품)이 많아 노후화되면 하체 잡소리가 날 확률이 높고 수리비도 많이 나옵니다.
⚖️ "세팅이 깡패다" 구조보다 중요한 제조사의 조율 능력
그렇다면 "토션빔 차량은 무조건 피해야 하나?"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NO"입니다.
서스펜션의 구조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세팅(튜닝)'**입니다.
빔의 강성, 부싱의 탄성, 쇼크업소버의 감쇠력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승차감은 천지 차이입니다.
실제로 프랑스 푸조나 르노 같은 제조사는 '토션빔의 장인'이라 불릴 정도로 세팅 능력이 탁월해, 멀티링크 못지않은 쫀득한 승차감과 핸들링을 만들어냅니다.
반면, 기술력이 부족한 제조사가 만든 설익은 멀티링크는 오히려 출렁거리고 멀미만 유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 같은 경우도 토션빔을 썼지만, 탄탄한 세팅으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즉, **"잘 만든 토션빔이 못 만든 멀티링크보다 낫다"**는 명언은 유효합니다.
다만, 물리적 한계로 인해 2열 승차감의 고급스러움은 멀티링크가 우위인 것은 사실입니다.
💡 스펙표만 보지 말고, 뒷자리에 가족을 태워보세요
지금까지 자동차 서스펜션의 양대 산맥인 토션빔과 멀티링크의 차이를 알아보았습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토션빔:** 주로 혼자 타거나 시내 주행 위주이며, 넓은 트렁크 공간과 가성비가 중요하다면 훌륭한 선택입니다.
**2. 멀티링크:** 뒷좌석에 가족을 자주 태우고, 장거리 고속 주행을 즐기며, 승차감에 예민하다면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멀티링크가 정답입니다.
자동차는 종이 위의 스펙으로 타는 것이 아닙니다.
구매를 고려하는 차가 있다면 반드시 전시장에 가서 시승을 해보세요. 특히 **가족이 탈 뒷좌석에 직접 앉아서** 과속방지턱을 넘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판별법입니다.
남들의 평가보다 내 엉덩이가 느끼는 감각을 믿으세요.
그것이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지름길입니다.